21-22 팬레터 리뷰

220209 팬레터 자셋 | 뀨쥬니혠 페어막 후기

써밋로그 2022. 2. 20. 21:58

김해진 役 이규형
정세훈 役 박준휘
히카루 役 강혜인
이 ⠀윤 役 박정표
이태준 役 윤석현
김수남 役 김태인
김환태 役 송상훈



팬레터 사연 중 가장 기대했던 페어의 기억을 남긴다. 사연이 시작하기 전부터 소원하던 페어였는데 이규형 배우의 합류 소식이 나오고 거품을 물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페어 첫공이 페어 막공이 될 줄은 몰랐지만....

가장 좋아하는 넘버인 '아무도 모른다'는 매번 관극 때마다 마음을 울리지만 특히 박준휘 배우의 '아무도 모른다'는 나에게 있어서 가장 독보적이다. 주변에 있는 것이라곤 온통 어두움밖에 없던 어린 세훈에게 한줄기 빛으로 찾아온 해진 선생님의 글은 어릴적 어머니에게 받았던 소중한 추억처럼 세훈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는 것을 멀리서 보는 나도 충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 Youtube. 콘텐츠제작사라이브

"선생이시여, 슬픔을 안고 계시나이까? 그것을 가리기 위해 그리 아름다운 문장으로 성을 쌓으시나이까."
"그렇다면 그 슬픔을 나누어 주소서."
"그리고 거기에 따르는 길을 지시하여 주소서."


뀨해진의 '아무도 모른다'는 다른 사람들이 쉽게 알 수 없도록 글속에 자신을 숨겨 두었고, 그것을 알아챈 사람이 나타난 것에 대한 천재의 동경과 인간적인 설레임의 느낌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뀨해진은 자신의 슬픔을 글속에 숨겨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슬픔 그 자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 Youtube. 콘텐츠제작사라이브

"당신의 편지를 읽을 때마다 글속에 숨은 마음까지 알아차리는 데에 깊이 감탄합니다. 나와 같은 슬픔을 가진 이를 나는 늘 그리워했습니다. 당신을 만나면 한없이 존경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알아 주고 발견하는 이가 있다면 분명 나와 비슷한 슬픔을 알고 있는 사람일 거라 생각할 김해진에게 드디어 삶에 있어 무언가를 함께 공유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사실은 해진을 하루 더 살아갈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그런 해진을 상상하며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세훈의 시작도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들은 편지와 함께 그들의 시간과 온기를 주고받았다 생각한다.



칠인회에 들어오게 된 뀨해진을 만나게 된 쥬니세훈은 작가와 작가 지망생으로써 만나게 된다.

"그럼 다음번에 꼭 써 올게요."
"세훈아, 자신감을 가져라."
"네! 이걸로 꼭 써 올게요!"



부끄러움 가득한 표정으로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쥬니세훈에게 뀨해진은 펜과 함께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그 펜을 받고 뀨해진과 약속하던 쥬니세훈의 행복에 벅찬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뀨해진에게 받았던 펜을 1막 내내 오른쪽 주머니에 꽂아 둔 채 있던 쥬니세훈을 보며 뀨해진에게 받았던 그 마음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구나 느꼈다.

하지만 자신과는 다른 속도로 깊어지는 해진의 감정, 더욱 뚜렷해지는 히카루의 정체성, 히카루라는 이름으로 낸 글이 처음 세상에 주목받기 시작하며 점점 깊어지는 자신의 글에 대한 집착 등이 뒤섞이며 그들은 길을 잃게 된다.

뮤즈 전, 옆에서 동인회지에 대해 열띈 토론(을 빙자한 술판)을 하고 있는 그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술을 마시는 뀨해진이 보였다. 술을 마시며 자신이 쓴 글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한 장을 구겨버렸다. 그리고 술 한 모금을 더 들이키더니 다시 한 장을 구겨버린다. 그렇게 세네 번을 반복했던 것 같다.

글이라는 것을 정말 소중히 생각하던 사람이 히카루라는 인물 하나로 글을 마구잡이로 구겨버리는 모습을 보며 혠카루가 뀨해진의 공백을 얼마나 크게 메우고 있는지 느꼈다.

"그이는 슬픔을 알아.
내 그늘까지 끌어안는 이.
때론 그를 안고 힘껏 울고 싶을 뿐."



팬레터 넘버 중 해진의 우울이 완벽하게 느껴지는 가사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아닌 자신의 '슬픔'을 알고, 자신의 '그늘'을 끌어안는 이. 자신이 곧 슬픔 그 자체이며 자신이 곧 그늘이기에 나를 끌어안을 수 있는 이 빛(히카루)이 아니면 절대 안 된다는 집착이 너무나 강하게 느껴졌다.

허공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뀨해진. 그리고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뀨해진의 자리로 가 해진이 구겼던 원고지를 소중하게 다시 펴 제자리에 두는 쥬니세훈.

눈물은 계속 흐르고 기침은 심해졌다. 그때 이리저리 편지를 뺏으려고 뛰어다니는 쥬니세훈을 보다 천천히 안경을 쓰고 그때부터 무언가 의심하기 시작한다. 칠인회가 자신의 옆에서 시끄럽게 떠들 때는 꿈쩍도 안 하던 뀨해진이 편지를 지키려고 하는 세훈에게 시선을 놓지 못하고 있던 그때 해진은 세훈에게서 무엇을 느꼈기에 의심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뀨쥬니혠의 섬세한 팬레터는 그야말로 글친놈x글친놈x글친놈 조합이었다. 여태 봐 왔던 쥬니세훈은 해진 선생님과 글에 대한 동경의 무게가 비슷한 세훈이라 생각했는데 이때 쥬니세훈은 이성을 잃은 완벽한 글친놈이었다. 혠카루 또한 이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훈이의 글에 대한 집착과 완벽히 동기화가 되어 뀨해진과 쥬니세훈을 삶의 벼랑 끝까지 몰아붙이는 것 같았다.

"이젠 내 모습 누구에게 차마 보일 자신이 없어.
함께 조용히 비극을 맞이할 연인이여."



아마 이때부터 해진은 자신의 숨을 태워 히카루와 함께 글을 남기고자 완벽히 결심하지 않았을까. 히카루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자신이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해진과 다르게 히카루는 자신에게 정체성을 불어넣어 주고 원동력이 되어 준 선생님과 함께 글을 쓴다. 한 명은 죽어가고 한 명은 그렇게 해 생명력을 얻는 것처럼 살아나는 관계. 그리고 그렇게 완성이 되어 가는 글을 보며 희열감과 황홀감을 느끼며 행복하게 웃는 세훈.

이 세 명 모두가 각자 살고자 하는 본능과 서로에 대한 집착으로 미쳐 시너지가 더욱 크게 일어나는 것 같았다. 누구를 대입해도 내가 살기 위해 상대에게 집착하는 과정이 너무나 똑같았다.

해진은 글을 남기며 '살았다'는 증명을 하기 위해, 히카루는 점차 '살아남'을 위해, 세훈은 글을 쓰는 사람으로써 '살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세상 필요없어. 아무도 필요없어.
그대만 내 곁에 있으면 모든 걸 버릴 수 있어."

"글자로 지어진 견고한 성.
여기서 우리 서로를 만날 수 있어.
이미 함께 있어, 이렇게."



자신과 시선이 맞물린 뀨해진을 바라보며 소리를 내어 웃는 쥬니세훈. 그리고 그 뒤에서 함께 웃는 혠카루. 그 둘의 웃음소리가 정말 한사람이 내는 소리처럼 들렸다. 소중하게 쥔 원고지를 가지고 선생님에게 다가가자 그 원고지를 뺏어 뀨해진과 함께 사라지는 혠카루. 혼자 남게 된 쥬니세훈의 표정은 막이 내리기 직전, 그 짧은 시간 동안 제정신으로 돌아온 사람처럼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검은방에서 글만 쓰며 숨을 태우던 해진을 찾아온 이윤. 햇빛도 안 들어오게 창을 다 가리고 있는 해진을 위해 그곳으로 찾아온 사람이 이윤이라는 것은 너무나 큰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생각한다. 표윤과 뀨해진의 관계성을 정말 사랑하는데, 생의 반려에서 만큼은 더욱 이 세상에서 서로가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 같았다.

"난 이제 상관없다.
그이가 누구든... 이제 상관없어."



뀨해진의 사연 디테일 중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그이가 누구든 상관없다는 말에 '이제'가 추가되면서 이 모든 이야기의 서사가 완성되는 느낌이었다. 이 모든 것을 제대로 잡기에 이젠 너무 늦었기 때문에 그이가 '누구'라는 건 상관이 없다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고, 자신에게 남겨진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이 살아 숨 쉴 수 있도록(글을 남기도록) 도와주는 이라면 이제 그이가 누구든 상관없다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래도 일단 살고 봐야 할 거 아니오!"

"살아 있어.
난 지금... 살고 있어."



살고 있다는 말과 함께 자신 앞에 놓여진 원고지를 툭툭 가르키는 뀨해진. 뀨해진의 인생에 너무나 오랫동안 비어 있던 그 공간. 아무도 메우지 못했던 그 공간을 지금 이 순간 가득 메워 주고 있는 히카루만이 그의 곁에 있을 수 있음이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해진의 고통을 잊게 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표윤은 어렵게 인정한다. 그리고 펜을 다시 쥐어 준다. 자신의 소중한 동료가 죽어가는 것을 보며 그것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크지만 시도조차 하지 못한 채 홀로 남겨 둬야만 하는 그 심정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고맙다, 윤아. 고맙다. 고맙다...."



표윤이 떠나고도 펜을 쥔 채로 윤을 생각하며 고맙다고 중얼거리는 뀨해진. 언제나 마음의 빈곤과 우울함에 잠식되어 외로운 삶을 살았던 해진은 칠인회와 이윤으로부터 사람이 사람과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에서 정으로 '함께' 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툴게 하나가 되어 가던 해진의 과정속에서 그들만의 소중함과 애틋함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해진의 편지 아웃트로가 나올 때 조명이 조금 늦게 꺼졌다. 그때 뀨해진의 손은 계속 허공에 머물러 있었다. 천천히 쥬니세훈의 머리로 다가갔지만 끝까지 머리를 만지지 않고 그 언저리만 맴돌던 게 정말 세훈이의 환상처럼 느껴졌다.

세훈이가 처음 선생님을 만났던 그때 그 봄 같은 모습. 자신을 보며 환하게 웃어 주던 그 모습을 세훈은 몸을 숙여 우느라 끝까지 보지 못했지만 마음으로 느끼지 않을까 생각한다.

바스라지는 꽃다발과 바랜 원고지를 가슴에 품고 어린 아이처럼 엉엉 우는 쥬니세훈. 평소 쥬니세훈 때와 다르게 조금 덜 울었다고 느꼈다.

여기가 정말 개인적인 느낌이 가득한 부분. 여태 보았던 쥬니세훈은 애정하고 존경하던 선생님의 부고도 지켜보지 못하고, 항상 죄책감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다 선생님에게 용서를 받았다는 안도감과 씻겨내려가는 죄책감에 목을 놓아 울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 회차에서는 해진 선생님이 정말정말 보고 싶어서 우는 세훈이 같았다. 무언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고, 다 말라버린 꽃다발처럼 앞으로도 점점 흐려질 선생님의 기억 때문에 너무 늦게 와 버린 자신을 원망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죽었을 때를 부르던 쥬니세훈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듬직했다. 성장한 것 같은 모습. 오로지 선생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선생님과 자신이 남겼던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글을 완성하여 출판할 수 있도록 다시 명일일보로 돌아가 글을 쓰며 마음이 단단해지지 않았을까, 조금 늦었지만 천천히 선생님이 있었던 그 공간에서 기억과 마음을 정리하지 않았을까 싶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빨리 두 번의 봄을 보낸 세훈은 이제 또 다른 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봄이 가고 또 다시 돌아올 때까지 자신과 함께 할 수 있는 두 기억들을 품에 남겼다고 생각한다.



내 사랑이 죽었을 때, 내 청춘도 죽었다.
그때는 차마 돌아보지 못했던 나의 봄을 이젠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사랑했던 두 봄을 이제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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