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헤드윅 리뷰

210930 헤드윅 자열둘 | 뀨드윅 제츠학

써밋로그 2022. 1. 24. 16:56


Hedwig | 이규형
Itzhak | 제이민



오늘은 내가 본 뀨드윅 회차 중 가장 토크 콘서트 같았다. 정말 헤드윅의 토크 콘서트에 와서 그의 일생 일대를 들으며 그가 만든 음악을 즐기러 온 느낌. 그 버프가 세션 실수로 인해 오프닝 곡을 두 번이나 하게 된 대참사가 대레전드를 불러온 것에서 나온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오늘따라 애드립도 다양했고, 이규형 배우님의 텐션도 더 높은 것 같았고, 몰입도 또한 여태 본 회차 중 가장 높았다.

그리고 헤드윅과 이츠학의 관계성에 대해 가장 많이 느낀 회차였다. 제츠학의 감정과 마음을 깊고, 길게 이해한 하루였다.

헤드윅과 이츠학의 관계는 우정이나 사랑이란 단어로 절대 표현할 수 없는 관계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첫 시작은 구속과 억압, 강자와 약자였겠지만 오늘 그들이 서 있던 무대에서 그 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서로간의 은근한 버팀이 보였다.

시작과는 다르게 서로를 미워하지 못하고, 어설픈 관계 속에서 유지해 온 시간들. 제대로 사랑받아 보지 못한 두 명. 상처받은 사람으로써 타인에게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관계. 그리고 그걸 각자가 너무나도 잘 아는 관계. 그래서 더 다가가지 못하는 관계.




토미가 말한 저 싸구려 전자 악기도 다 나의 이야기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치더니 저 새끼가 다 가져갔다고 허탈하게 웃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리고 곧바로 뒤를 돌아 의자에 손을 짚어 비틀거리는 몸을 버티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제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주관적이지만 이제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문장은 헤드윅의 작품을 가장 일차원적으로 날것의 단어로 표현한 문장이라 생각한다.

사실은 헤드윅을 지나친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빼앗긴 것이 아니라 헤드윅 스스로가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주고 살아간 것이며, 정작 본인을 채우고 있는 건 스스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 뀨드윅이 뀨토미의 이야기를 하며 화를 낼 때 제츠학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었다. 무슨 생각으로 그 자리에서 일어나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을 하며 뀨드윅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린 걸까 궁금해진다. 뀨드윅과 긴 시간을 함께 한 사람으로써 그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자연스럽게 미워하는 마음일까, 아님 마지막 무대마저 음악이 아니라 뀨토미와 관련된 자신의 상처를 분풀이하는 모습이 보기 싫어서일까.

오늘이 마지막 무대라는 것을 뀨드윅만 아는 것이 아니라 앵인, 심지어 제츠학까지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오늘에서야 처음 했다. 제츠학은 뀨드윅과도 앵인과도 이게 마지막일지 모르는 무대에서 노래를 할 때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노래를 부르지 말라고 툭 뱉고도 농담을 하며 들어가는 뀨드윅이 일부러 제츠학에게 자리를 내어 준 것이 보였고, 그걸 모르는 제츠학은 관객들에게 조용히 해 달라는 사인을 날린다. 어색하게 무대를 시작해서 온 마음을 담아 노래하고 마지막엔 감격스러운 얼굴로 허리를 푹 숙여 인사를 했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는 제츠학을 바라보지 않고 트레일러에 기대어 바닥이나 허공을 보던 뀨드윅이 오늘은 뒤에서 끝까지, 정면으로 몸을 돌려 제츠학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저 자유로운 세상에서 노래만 하고 싶었을 제츠학의 그 감정을 뀨드윅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말도 없이 그렇게 뒤에서 제츠학의 뒷모습을 지켜보지 않았을까. 자신이 제츠학에게는 이렇게 얼렁뚱땅 무대를 내어 주는 거 말곤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Aren't you tired tryin' to fill that void?
- 허전함을 채우려는 노력이 지치지 않나요?
or do you need more?
- 아니면 그 이상을 바라나요?
Aint' it hard keepin it so hardcore?
- 힘겹게 버티는 게 버겁지는 않나요?




오늘의 제츠학은 뀨드윅을 만나면서 성장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처음엔 헤드윅의 권력에서부터 시작한 관계였지만 그렇게 해서 얻게 된 자유로부터 많은 세상을 보게 된 제츠학은 뀨드윅과 자신을 "우리"라는 소속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한편으론 어설프지만 뀨드윅의 상처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의 Shallow는 뀨드윅보다 세상으로부터 한걸음 앞서 나아간 제츠학이 뀨드윅에게 보내는 작은 위로의 시작이자 용기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세상이, 그리고 그들이 우리를 아프게 하는 이 얕은 수면으로부터 우리는 멀어지고 있다고. 사람들의 질타와 시선은 우리의 생각보다 깊지 않다고. 그들이 아무리 우리에게 돌을 던져도 그 파장이 깊지 않다는 것을 제츠학이 알려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직 세상에 두려운 게 너무나도 많은 뀨드윅에게.

그래서 뀨드윅은 너무나도 안쓰러운 사람이다. 주는 것이 서투른 사람이지만 본인도 모르게 주려고 노력하며 사는 사람. 하지만 빈 공간이 너무 커서 자꾸만 무언가로 채우려고 하는 사람. 살아온 나날을 자유와 사랑에 매달려 온 사람이 다른 걱정과 잡념은 집어치운 채로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음악에만 푹 빠졌던 그 시간들이 뀨드윅에게는 얼마나 소중하고 증오스러운 시간일까.




라멘트 전, 니가 나의 반쪽이었다며 제츠학에게 다가가자 제츠학이 아니잖아를 몇 번이나 외치며 오열하다 결국 원래 본인의 자리로 돌아가 엎어지며 눈물을 흘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기 자리를 찾아가 그 춥고 어두운 곳에서 눈물을 흘리는 제츠학. 그리고 노래를 시작하지 못한 채 그런 제츠학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며 감정을 억누르는 뀨드윅.

내가 너의 반쪽이 아니라는 거 너도 알잖아라는 뜻일까, 그런 거 이제 소용없는 얘기라는 거 알잖아라는 뜻일까, 정말 너의 반쪽이 필요해서 이러는 거 아니잖아라는 뜻일까. 그 아니잖아라는 오열에 정말 생각이 많아졌다.

라멘트가 끝나고 익스퀴짓 때 뀨드윅의 비명과 증오에 가득찬 제츠학의 표정은 극적이었다. 가발에 미끄러져 천장을 바라보고 넘어진 뀨드윅이 토마토 하나를 번쩍 들어 허탈하게 웃다가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항상 벗어던지는 순서가 가발 -> 원피스 -> 속옷 -> 토마토 순서였는데, 오늘은 가발을 벗어던진 날것의 모습으로 속옷을 입은 채 토마토를 빤히 바라보는 그 장면이 너무나도 충격적이고 가슴 아팠다.

여태 살아온 자신의 가짜 모습을 마주한 그의 공포를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리고 토마토를 가슴 중앙에 한 번, 밑으로 한 번 가져다대곤 터트렸다. 이 위도 가짜, 이 밑도 가짜. 그리고 그 가짜를 나타내는 토마토를 주먹으로 으깨고 무너졌다.




미드나잇, 불이 꺼진 펩시 안으로 뛰어들어가려던 뀨드윅이 제츠학과 눈이 마주쳤고 앵인을 쭉 둘러보다 마이크를 줍고, 손톱을 지워 보고, 마지막으로 흐트러진 가발을 들었다. 아이가 소중한 물건을 다루는 표정으로 가발을 들어 빗어 주다 엉엉 울음을 터트리며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현실을 마주해 몰려오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로 노래를 시작했다.

뀨드윅이 가발을 건내어 주자 왜 쓰지 않냐는 제츠학의 당황스러운 표정. 그리고 나는 이 가발을 쓸 수 없다며 안 된다고 고개를 젓는 그를 완벽하게 밀어내고 온전히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뀨드윅의 모습은 처음으로 울음을 삼키지 않고 뱉어내는 사람 같았다. 그 순간은 온전히 음악과 자신만이 존재했고, 세상에 목놓아 소리치는 오랫동안 가슴속 안에서 묶인 감정들이었다.

제츠학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뒤를 돌아 걸어가던 뀨드윅이 마이크를 바닥에 놓고 벌어지는 벽 사이로 들어가 벽을 손으로 잡고 버틸 때, 뀨드윅이 객석 기준 왼쪽 바닥에 두었던 마이크가 무대 중앙 근처로 굴러 들어오며 닫히는 벽 사이로 사라지는 뀨드윅의 뒷모습과 맞물려져 있었다.

그 맞물려 보이는 마이크로 뀨드윅의 발걸음 뒤에 남은 건 그의 인생과 감정과 기억 그리고 사랑을 적어 노래한 음악이 남았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았지만 정작 뀨드윅은 보지 못한 채 사라졌다.

그 장면은 내 인생에 있어서 헤드윅이란 작품을 기억할 때 가장 첫번째로 기억이 될 장면이며, 정말 죽어서도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