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925 헤드윅 자열하나 | 뀨드윅 제츠학

Hedwig | 이규형
Itzhak | 제이민
오늘따라 더 많이 사랑스럽고 애교도 엄청 많던 뀨드윅. 토미 니가 내 음악을 가지고 내 이야기를 니 이야기로 하고 다니는 거 나도 더는 보고 있을 수 없지. 내가 오늘 다 까발리고 속 시원하게 무대 내려간다! 뭐 요런. 그래서 오늘따라 훨씬 감정의 선명도가 더 뚜렷한 뀨드윅이었다.
휘트니 휴스턴의 음악을 부러워하던 뀨토미가 느꼈던 감정을 나는 오리진을 부르는 뀨드윅에게서 느꼈다. 뀨드윅이 만든 이 사랑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는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있을 것 같았다. 성별이 다양한 사랑, 모양이 다양한 사랑. 바래진 것 하나 없는 완벽한 태초의 사랑을 글로 표현해 낸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뀨드윅 스스로는 알고 있을까.
한편으론 그 태초의 때묻지 않은 인간의 감정에 집착하고 있는 뀨드윅이 안타까웠다.
감정의 학습은 무섭다. 평범하지 않은 방법들로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사랑이란 감정을 알게 된 뀨드윅은 남들이 말하는 그 평범한 사랑이 얼마나 궁금했을까. 얼마나 고팠을까. 아무런 약속도 상처도 없이 온전히 감정만 있는 순수한 사랑을 염원하는 뀨드윅의 마음을 누가 알아 줄까.
음악을 사랑하는 그저 평범한 한 사람으로 살 수 있었던 그가 자유를 선택함으로써 현재 자신의 모습이 되어 버렸다는 자책이 스스로의 자유를 다시 한 번 뺏어가지 않았을까. 인간이 자유를 원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데.
사랑하는 음악과 동경하던 자유를 선택한 나에게 외로움을 준 나. 그런 본인이 밉지만 나마저도 이런 나를 미워하면 누가 날 사랑해 줄까라는 걱정에 더더욱 그런 모습을 감추기 위해 애쓰지 않았을까. 나의 자유를 앗아간 가발에게 이제 헤드윅이란 사람으로 또 다른 자유를 동경하며 가발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그 감정은 어떤 감정일까.
오늘 오랜만에 lately에서 울컥하는 감정을 느꼈다. Cause they always start to cry 부분을 부를 때 먼 허공을 바라보던 눈이 반짝거리고 곧바로 눈을 질끈 감는 뀨드윅의 표정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불우한 감정을 몸소 느끼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프다. 사랑이란 감정을 조각조각 떼어서 준다는 느낌을 느낀다는 것. 그 자체로도 나의 크기가 정해져 있고 하나씩 소멸되어 다시 자라날 수 없는 거라 여기는 것은 또 다른 자기 방어의 하나이다. 그걸 알면서도 사랑을 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간절함. 이런 자책과 자기 방어로 이루어진 뀨드윅은 바라볼수록 마음이 아픈 사람이다.
"Cause this time could mean goodbye."
누군가는 절대 자신을 떠나지 않고 온전히 사랑해 주길 바라면서도 떠나가는 사람에게 모질지 못한 채 또 그 상황을 받아드리고 있는 사람. 개자식이라 욕하지만 다른 감정은 말로 표현하지 못해 그가 듣지 못하는 곳에서 노래하는 사람.
위킫맅을 부르는 뀨드윅은 너무 사랑스럽다. 처음 등장했을 때 느끼는 사랑스러움과 다른 느낌. 유일하게 뀨드윅의 인생과 분리가 된 노래가 아닐까 싶다. 다른 넘버들은 모두 뀨드윅의 이야기를 반영하고 있지만 위킫맅은 그 중심이 불분명해 이 노래는 음악으로서의 목적이 더 강조가 되는 것 같다.
타인이 보아도 노래하는 모습이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그 모습을 두 시간 반이라는 시간 동안 단 4분만 느낄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뀨드윅 스스로의 인생에서 오로지 음악을 하는 한 인간의 존재로 살아간 날들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게 만든다.
오늘은 뀨드윅이 뀨토미를 정말 많이 사랑했구나라고 느꼈다. 처음으로 자신에게 아무런 목적 없이 사랑을 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걱정 마, 토미. 너는 무대에서 입만 뻥긋거려.
내가 무대 뒤 깜깜한 곳에서 대신 노래할게.
믹재거도 그렇게 립싱크했대~"
인생의 반 이상을 자유롭지 못하고 (생물학적으로)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몸으로 원하지 않던 일을 하며 깜깜한 곳에서 살아온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 깜깜한 곳에서 노래를 하겠다 고백하는 것은 대체 얼만큼 사랑하고 있어야만 가능한 일일까.
그래서 뀨토미의 위킫맅을 들은 뀨드윅은 이제 완전하게, 진짜로 버려졌구나라는 기분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자신을 외면하는 사람을 쫓는 것은 쉬웠지만 막상 뒤를 돌아 자신에게 인사해 주는 뀨토미를 보고 발걸음을 떼기가 어려웠겠지. 뀨드윅의 존재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당신은 완전하게 멋있는 사람이니 이제 스스로 서기를 바라는 뀨토미의 용서를 빗댄 응원이었겠지만 사실 뀨드윅은 아직도 그를 많이 사랑하고 있었기에 끝이라는 감정에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내몰려 고통을 더 많이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그저 분노라는 감정이 가득하지 않을까 했던 예전과는 다르게 아직까지 많이 사랑하는 감정을 결국 다 감추지 못하고 무너지는 뀨드윅이 느껴졌다.
오늘 믿나는 아직도 사랑하는 뀨토미의 바람대로 스스로 서는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마지막까지 남은 힘을 다 짜내어 노래를 부르고 제츠학에게 후련한 척 자리를 내어 주는 모습 같았다.
본인을 위한 인생을 한번도 살아 본 적이 없는 뀨드윅이 살생을 목적으로 꾸역꾸역 살아낸 이 거지 같은 현실속에서 잠시나마 순수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고, 자신 인생의 유일한 행복을 함께 했던 사람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어 주는 뀨드윅.
하나를 가르고 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그 순간,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그때와 달리 뀨토미를 향한 인생의 방향점이 생긴 후 뀨드윅과 그 감정이 분리가 되며 이번에는 끝까지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하던 아슬아슬한 모습이 아직까지 눈에 생생하다.
제츠학에게 가발을 건내어 주자 제츠학은 "아니야. 안 돼." 를 반복하며 고개를 젓고 가발을 되려 씌워 주려고 하지만 뀨드윅의 단호함에 결국 고개를 푹 숙여 울어버린다. 제츠학은 뀨드윅의 노래와 춤에 잘 웃는 사람이고,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 때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눈물만 흘리고, 뀨드윅이 비운 무대 위를 온 힘을 다해 채워 준다.
뀨드윅이 제츠학을 조금이라도 다른 마음으로 대했다면. 또는 그의 주변에 제츠학이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깨달았다면 아마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관계가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뀨드윅은 제츠학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에게 친절히 대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자신과 비슷한 기구한 인생을 사는 제츠학에게 권력으로 자유를 빼앗은 본인의 행동이 개같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기 때문에 차라리 이런 관계를 유지하는 게 제츠학을 자신이 있는 곳으로 끌어내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제츠학의 가발과 하나가 된 모습에 놀라고 여태까지 그의 자유를 억압했던 본인의 죄책감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그를 먼저 꽉 안아 주는 제츠학과 뀨드윅의 포옹은 아마 뀨드윅의 마지막 순간 가장 기억에 남을 온기가 아닐까 감히 생각한다.
마지막 갈라지는 장벽 사이로 사라지며 뀨드윅은 장벽의 끄트머리에 서서 벽을 잡고 한참을 버티다 사라졌다. 태어난 것도, 헤드윅으로 살아가게 된 것도, 사랑을 갈구하게 된 것도 그리고 이 곳에서 사라지는 마지막까지 본인의 의지가 아닌 뀨드윅의 마지막 순간 스스로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에 좌절해 무언가라도 붙잡고 싶었던 심정이 아니었을까. 단 한 명이라도 뀨드윅에게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 줬더라면 아마 많은 것이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