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헤드윅 리뷰

211004 헤드윅 자열셋 | 오드윅 미츠학 | 오드윅 총 후기

써밋로그 2022. 1. 24. 17:19


Hedwig | 오만석
Itzhak | 이영미



나에게 처음 헤드윅을 알려 준 오만석 배우님과 이영미 배우님의 자막. 영화와 가장 흡사한 오드윅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눈 앞에서 생생하게 일어나는 감정들은 항상 나에게 더 날것으로 찾아온다.

사실 처음엔 미츠학도 영화와 비슷하게 있는 듯 없는 듯 그 정도의 존재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미츠학을 여러 번 만나고 또 오미 페어를 세 번 정도 만난 후에야 조금은 그들의 관계성의 깊이를 알게 되는 것 같았다.

오드윅은 쇼맨쉽이 뛰어나고 세상에 가장 반감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이번 언니들 중 겉과 속의 깊이가 많이 차이나는 사람. 근데 그 속을 미츠학은 진작에 알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오드윅은 너무 깊어져 본인도 찾기 어려운 자신의 내면의 속을 미츠학이 알고 있을 거란 사실도 모르는 것 같았다.




자신에게 권력을 휘두르는 자에게 침묵을 하기는 쉽지 않다. 오드윅의 권력의 힘이 강한 것 같지만 미츠학의 침묵은 자의적이다. 강제로 침묵을 당하는 건 어렵지 않을지 몰라도 스스로 침묵을 지키는 일은 그를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있어야 가능한 일일까. 나보다 더 좆같은 세상을 살아낸 동정의 마음에서일까, 나와 같은 처지인 사람이 휘두르는 폭력에 대응하지 않는 게 마음이 편해서일까.

이츠학의 침묵은 절대 약함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준 게 바로 미츠학이다.

오드윅과 미츠학의 페어는 다른 페어들 중 가장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다. 넘버 중간중간에도 붙어 있는 경우가 정말 드물다. 그래서 그들의 관계성과 무대를 위해 미츠학을 이용하는 오드윅의 현실적인 상황을 더 잘 보여 주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무대에서 오드윅을 더 환하게 해 주는 존재의 미츠학이 이상하게 눈에 더 많이 들어오는 것 같기도 하다.




오드윅은 가발에 집착이 가장 강한 언니라고 생각한다. 가발이 조금은 자연스러운 상태가 됐거나 또는 가발 안으로 숨으려고 하는 케이스와 달리 오드윅이 가발을 대하는 태도는 또 다른 자신을 대하는 태도라 생각한다.

오드윅은 자신의 조각조각을 나누어 주었다고 말하지만, 정작 본인은 어딘가에서 떼어져 온 것들을 자신이라 칭하며 이것저것 누더기마냥 이어 붙인 스스로를 보잘 것 없다고 느끼진 않았을까 마음이 아프다.

"약한 척하지 마. 불쌍한 척하지 마.
전부 니가 선택한 일이잖아."


가발에게 하는 이 말들이 사실은 어딘가에서 살아 숨쉬고 있을 한셀에게 하던 소리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 오드윅에게 인생은 끝도 없는 선택이었다. 엄마의 이야기를 흘려듣지 못한 것도, 그 빛을 따라 다시 루터에게 간 것도, 가발을 쓴 것도, 헤드윅의 삶을 살게 된 것도, 그날 토미를 만나 에스프레소바에 초대한 것도 전부 자신의 선택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모든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하지만 그 모든 선택에 항상 책임이 뒤따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하기 위해 오드윅은 어린 한셀에게 채찍질하며 스스로 속을 멍들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렇게 선택에 목이 메였을까. 한셀의 첫번째 난도질도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짙은 어둠속을 지난 새벽.
내 어지러운 절벽."


에스프레소바에서 오아시스의 Wonderwall를 개사해 부르는 오드윅의 모습은 그 어떤 노래 중에서도 가장 약하고 슬픈 얼굴을 하고 있다. 현실과 상상을 가르는 그 '벽'의 존재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현실과 상상, 한셀과 음악, 헤드윅과 한셀, 헤드윅과 토미, 희생과 자유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것들은 항상 벽 너머에 있었고, 그것을 가지기 위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상실감에 빠져가며 살지 않았을까. 그래서 굽이진 길을 돌고돌아 만난 토미와의 이별은 더 잔인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 왜? 토미, 뭐가 두려운 거야?
- 아니야. 그런 거.... 사랑해, 헤드윅.
- 사랑해? 사랑한다면... 날 정말 사랑한다면 내 이것까지 사랑해 주면 안 돼?
- .......
- 아깐 천국이라고 하더니 왜 뒷걸음쳐? 이젠 내가 지옥문 같아?
- 아니야. 사랑한댔잖아, 사랑한다고.
- .......
- 아, 제발 나 좀 내버려 둬.


토미가 자신의 반쪽임을 느낀 순간 벽 너머의 자유를 보았고, 그 자유를 움켜쥐고 싶게 한 토미에게 드디어 한걸음 떼려고 하는 오드윅을 밀어 다시 절벽으로 떨어트린다. 황혼의 새벽, 그 어지러운 절벽과 현실을 딛고 일어선 오드윅을 뒤로 다시 밀쳐버렸다.

금방이라도 버림받을 것 같은 이 상황에서 자신의 두려움은 안중에도 없는 사람. 그저 사랑하는 그의 두려움을 먼저 해소해 주고자 무엇이 두렵냐 묻는 사람. 자신은 아무것도 받은 게 없지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음이 더 힘든 사람. 나에게 오드윅은 그런 사람이다.




오드윅의 믿나는 아주 어린 옛날 한셀에서부터 현재까지 시간들이 통채로 들려 없어진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한 헤드윅의 모습처럼 보였다.

항상 오드윅이 미츠학에게 가발을 줄 때의 그 표정들은 무언가를 부탁하는 얼굴이었다. 이번 후기 중 가장 개인적 견해가 많이 들어간 부분이다. 오드윅의 가발은 어린 한셀과 오드윅을 이어주는 매개체라 생각한다.

오드윅 곁에 가발이란 어린 시절 원래 나의 모습을 계속 기억하기 위함도 있을 것이고, 가발을 벗으면 헤드윅의 모습이 아닌 잠시나마 또 다른 나의 모습인 한셀의 안신처가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것을 미츠학에게 건네어 준다. 이런 나보다 내 어린 한셀을 이츠학 니가 더 잘 이해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래서 나는 미츠학이 더욱더 오드윅의 반쪽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드윅은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다. 미츠학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 명이 다 줄 수 없다면, 한 명이 부족하다면 또 다른 부족한 한 명이 채워 줄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은 그렇게 다 부족한 존재로써 서로를 채워주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이번 커튼콜의 특성상 극과의 연장선으로 느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하지만 오드윅은 처음으로 온전히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컷콜의 오리진은 한없이 어리고 작았던 한셀을 위한 오드윅과 미츠학의 위로의 노래이며 심장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 각자의 고통과 슬픔을 서로의 온기로 위로해 주는 환상 같지만 너무나도 바라오던 꿈같은 장면이었다. 서로의 심장 부근에 손을 얹고 한 글자 한 글자 진심으로 꺼내어 함께 눈을 바라보며 노래하는 그 모습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알 것 같은 그 모습, 왜 기억할 수 없을까.”



하지만 난 알아, 니 영혼. 끝없이 서린 그 슬픔. 한셀, 너의 슬픔은 바로 나의 슬픔. 심장이 저려오는 애절한 고통. 그건 사랑.

상처받은 한셀을 숨기며 살아가던 오드윅이 자신의 부족한 온기로 잡아 준 한셀의 손은 그 어지러운 절벽의 마지막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라져가는 아름다운 나의 꿈.
세찬 폭풍으로 모든 게 바뀐 이 여름과 완전하게 사라지는 꿈.
날아가, 한셀. 난 이제 외롭지 않아.
처음부터 너와 난 하나였으니까.
넌 하늘 저편 밝은 별.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나의 어두운 한밤 중 별빛.
넌 외로운 세상 지친 영혼.
하지만 지지 마, 포기하지 마.


다양한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를 외롭게 두지 않았으면 한다.

- 2021 헤드윅 오만석 이영미 배우님을 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