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edwig | 이규형
Itzhak | 김려원
내가 가장 사랑하는 헤드윅인 소중한 뀨드윅의 마지막을 기록하려 한다.
뀨드윅은 웃는 모습이 너무나도 예쁜 사람이다. 충분한 고마움을 아는 사람이고, 온전한 따뜻함을 아는 사람. 그렇지만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산다는 것이 뀨드윅을 여태 온전한 하나의 사람으로 만들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엄마에 대한 트라우마 같은 기억, 타인으로 인한 상처를 본인의 부정과 방어 기제로 가득 채우고 살아가는 그 삶에서도 뀨드윅은 음악으로 그 일생을 기록하려 했다. 그리고 나는 그날 밤, 그의 삶을 함께 돌아보며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무언가를 주고 떠난 뀨드윅을 기억해 본다.
"나 남의 치부나 팔아서 이용하는 그런 치졸한 여자 아니에요!"
건너편 타임스퀘어에서 자신과의 사고를 이용해 속죄의 투어를 돌고 있는 토미와 다르게 뀨드윅은 토미와의 관련성을 두려고 하지 않으려는 모습이었다. 처음엔 자신의 노래라는 것을 계속 증명시키기 위해 토미와 가까운 곳에서 무대를 했을 거라 생각했지만 어쩌면 토미의 목소리 또 자신의 이름을 불러 줄까 하는 기대감에 계속 그 근처에 머무르려 했었던 건 아니었을까.
온갖 클럽, 출장 파티, 아파트 테라스, 모텔 라운지 등 작은 무대를 거치고 거쳐서 오늘 이 아름다운 밤, 브로드웨이 밀레니엄 극장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 뀨드윅의 눈은 너무나도 예쁘고 순수해 보였다. 오히려 극장을 채워 준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그 벅찬 마음을 표현했던 뀨드윅.
그리고 자신과 꼭닮은 시 한 편을 읊어 준다.
길바닥은 나의 집, 나의 집은 길바닥.
길 위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내 몸 위에 올라탔던 사람들도 생각나네.
사람들과의 만남을 기록한 지도.
날 바라보는 시선들의 각도.
내 몸 위에 있는 손의 위도와 경도.
그것만이 내 존재를 가늠할 수 있는 유일한 척도.
집이 없다는 것은 마음의 안식처가 없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외로움이 가득한 떠돌이 인생을 살아온 뀨드윅. 자신이 타인으로 인해 조각조각으로 맞추어진 누더기 천인 것처럼 표현한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 절대 지워지지 않을 위도와 경도. 그것만이 자신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유일한 기억이라 소개한다.
본인조차도 자신이 누군지 모르는 텅 비어 있는 삶. 어떻게 살아 있는 건지, 왜 살아 있는 건지 자꾸만 생각하게 되는 그런 의문이 가득한 삶.
자신이 이 자리에 서 있기까지의 일생을 순서로 진행하는 뀨드윅과 토미의 콘서트 형식은 비슷했지만 토미는 그 중심이 거짓이 섞인 자신의 탄생이었고, 뀨드윅은 자신이 타인으로 인해 만들어진 과정이었다.
평생을 자기 마음껏 자유롭게 표현하고 행동했던 토미와 겉과 속의 거리가 멀어 자신의 진심어린 외침이 겉으로 닿지 못하는 뀨드윅의 차이였다.
엄마가 해 준 이야기로 만든 오리진을 들려주며 뀨드윅은 표정과 행동,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사용해 우리에게 그때의 그 생동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러다 파란색과 노란색 조명이 뀨드윅을 감싸는 찰나의 순간 왼쪽을 바라보며 행복하게 웃는 뀨드윅을 보았다.

"나는 기억해. 두 개로 갈라진 후, 너는 나를 보고 난 너를 봤어."
현재 이 시점에서 토미에게 버림을 받은 뀨드윅은 아직까지도 토미가 자신의 반쪽이 아닐까 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반쪽이 자신의 이 꼴을 보고 도망친 그 순간부터 앞으로는 평생을 나의 반쪽을 그리워만 하며 보내야 할 것 같은 두려움과 살아온 뀨드윅.
그렇지만 노래를 부르면서 잠시나마 토미를 자신의 반쪽이라 생각했었던 그때 그 순간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오랜 옛날 춥고 어두운 어느 밤, 신들이 내린 잔인한 운명."
인간이 두 개로 분리가 되어 평생을 외로움에 떨며 자신의 반쪽을 찾아야 한다는 것은 신들의 운명이라 믿으면서 자신에게 처해진 이 상황들은 온전한 자신의 선택과 몫이라 생각하는 어리석고 순수한 책임감이 뀨드윅을 더 힘들게 하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을 짊어지려고 하는 더러운 책임감을 애써 외면하기 위해 계속 술을 마시지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진심어린 자책이 뀨드윅을 저 수면 밑으로 당기고 있었다.
려츠학이 노래 부르는 모습을 트레일러에 기대어 바라보던 뀨드윅은 시선을 오래 머물지 못하고 돌려버렸다. 그리고 려츠학의 목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는 밴드를 서운하단 눈빛으로 바라보다 한 번 더 시선을 거두는 뀨드윅. 상체가 들썩이는 게 다 보일 정도로 크게 한숨을 쉬는 모습까지.
우리 어쩌다 이렇게까지 흘러 들어왔을까, 여기서 이런 모습으로 나 좀 봐 달라 노래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잠시나마 무대에서 조명을 받아 환하게 빛나던 뀨드윅의 모습이 무대 뒤 어두운 곳에서는 마음의 한켠과 비슷한 그늘이 지고 있는 것 같았다.
위기너 시작 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그때를 회상하며 연기하는 뀨드윅의 고통 어린 눈빛은 생생했다.
"What the f**k! 나 왜 자른 거니...?"
대사 후에 자조적이게 웃던 뀨드윅은 쓴 마음에 술을 한 번 더 들이켰다. 뀨드윅이 생각하는 그때의 자신의 모습은 너무나도 처량하고 그 상황이 어이가 없을 정도로 허무했겠지.
엄마가 갑자기 보고 싶었지만 전화할 용기도 없었고, 사랑이라 생각했던 사람은 자신과 꼭닮은 이런 보급형 가짜 집 안에 자신을 두고 떠나버렸다. 그리고 그 춥고 외로운 트레일러 안에는 엄마와 루터가 만들어 낸 여자도 남자도 아닌 자신과 가발들 뿐이었다.
뀨드윅은 가발을 벗어 루터가 결혼 기념일에 선물한 선물 상자 박스 위로 던져버렸다. 털뭉치 같은 갈색 가발은 뀨드윅이 자유를 위한 선택이었고, 루터가 선물해 준 가발은 영원한 구속을 뜻하는 것 같았다. 결국엔 헤드윅이 선택한 자유도 자신을 구속하는 일에 불과했던 것이다.
"나의 고통, 나의 지옥... 나의 헤드윅."
이때 뀨드윅이 말한 헤드윅은 한셀이 뀨드윅으로 막 변했을 때의 자신의 모습을 빗대어 표현한 것 같았다. 그때 그 선택을 한 한셀에게서 피어난 새로운 헤드윅. 어쩌면 자유와 음악을 위해 뀨드윅으로 변한 삶을 선택했더라도 헤드윅이 되고 싶어서 한 결혼이 아니었기 때문에 루터에게 버림받기 전까지는 뀨드윅의 본질은 계속 한셀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오늘 같은 세상 어지러운 이 밤. 트레일러 타운 불빛이 꺼지면 난 외로워. 난 지쳐. 슬픔에 터질 것 같아. 이제 여행을 떠날 시간."
이 여행을 떠날 시간은 이제 완벽하게 한셀을 버리고 또 완벽하게 혼자가 된 뀨드윅의 삶을 살기 위해 돌아오지 않을 여행을 떠나는 것 같았다. 한셀을 숨기기 위해 화장을 하고, 다른 생각이 들지 않게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를 들으며 그렇게 헤드윅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적어낸 음악이라 생각한다.
"지나간 내 과거들과 여자로 변한 날 보면 요지경 세상사 신기한 인생."
자신이 헤드윅으로 살더라도 본인이 한셀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루터가 있었지만 이제 엄마도 루터도 없이 그 누구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줄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때부터 자신의 존재에 집착을 하기 시작했고, 겉모습을 완전히 받아들여 진짜 헤드윅의 존재를 각인시키려고 했던 게 아니었을까.
"지금은 술 한잔 들이키고 바라 봐, 벨벳 상자 속. 선물 받은 내 가발."
루터에게 버림받았을 땐 뜯어보지도 못했던 가발을 이젠 술 한잔을 마시면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버티는 것도 뀨드윅에게는 자신만의 생존이었고, 자신을 위한 용기였다.
살아야 한다는 인간의 본능과 어둠에 익숙해지는 그 과정 속에서 태어난 뀨드윅은 계속 그런 삶 속에서 살아 오지 않았을까.
펩시 문 뒤로 토미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싸구려 전자 피아노를 사고, 이마에 실버 크로스를 그리고, 스스로를 토미 노시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실성한 듯 웃던 뀨드윅은 술병에 꽂힌 빨대를 집어던지고 병나발을 불었다.
자신의 백 마디 천 마디 외침은 공중에서 힘없이 흩어지는데, 토미의 저 한마디는 너무나도 강력한 힘으로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들 토미 얘기 들으러 온 거 아닌가? 맞잖아. 내가 뭐라고 여길 채워."
자신이 토미 노시스가 된 그때를 설명해 주며 다시 한 번 뀨드윅의 존재를 부정하는 토미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뀨드윅은 쥐고 있던 끈을 놓아버리는 것 같았다. 자신의 마지막 무대일지도 모르는 이 곳에서 행복하게 웃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러 오지 않았냐 묻던 그 웃음이 그나마 남아 있던 자존심과 함께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루터와 이혼한 뒤 저는 제 첫사랑인 음악으로 돌아갔어요. 그리고 싸구려 전자 피아노를 하나 샀죠."
그동안의 외로움을 자신의 첫사랑인 음악으로 꾸역꾸역 채웠던 나날들. 아무도 공감하지 못할 그 공포와 외로움 속에서 자신을 살아낼 수 있게 한 음악은 뀨드윅에게 삶 그 이상의 존재였을 것이다. 그때를 회상하던 뀨드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맞아요. 저 새끼는 비싼 기타로 시작했어요! 저 새끼가! 아주 다 가져갔네...."
그리고 비틀거리며 뒤를 돈 뀨드윅의 눈에 들어온 밴드. 앵인을 바라보다 다시 관객석을 보며 웃는다.
"아니네. 여기 남았네. 내 가족. 내 밴드."
평범한 가족에게서 받을 수 있는 정서적인 교류가 없을지라도 앵인은 늘 혼자였던 뀨드윅에게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 준 하나의 가족이었다.
토미와의 두 번째 만남을 회상하는 닥터 에스프레소 바.
Well, I'm a man of many wishes, hope my premonition misses
나는 바람이 많은 남자예요. 내 불길한 예감이 틀리길 바라요.
But what I really feel my eyes won't let me hide
하지만 내가 확실히 느끼고 있는 것은 나의 눈은 거짓말을 못한다는 거예요.
Cause they always start to cry
항상 눈물이 흐리기 시작하니까요.
Cause this time could mean goodbye
이 시간이 이별을 의미할 수도 있으니까요.
닥터 에스프레소 바에서 토미를 만난 그때를 회상하며 부르는 Lately는 뀨드윅의 감정에 흔적을 남긴 많은 사람들의 지문이 남아 있다. 애초에 자신이 불운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의 처지를 받아드리는 것 같지만, 잘 보면 이 지독하고 아픈 외로움에 내 눈만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꼭 그것을 토미가 알아 주길 바라는 것 같았다.
"길 잃고 헤매는 당신. 따라와, 나의 속삭임."
뀨드윅이 처음 작곡한 노래는 쓸쓸한 외로움 속에서 평생을 살아온 한셀 그리고 뀨드윅이 자신과 함께 이 춥고 어두운 도시를 건널 반쪽을 기다리고 있음을 표현한 음악이라 생각한다. 어디선가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있을 반쪽이 있을 거라고.
"세상은 잔인한 무대.
후회는 패배자의 넋두리일 뿐."
지금 서 있는 무대 위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그 시선들 속에서 언제나 패배자로 살아온 뀨드윅.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내가 어디서부터 흘러 여기까지 온 것인지에 대한 의문점이 생기기 시작하며 그 답을 평생 갈구했을 것이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 줄 사람을 찾아 다니는 것.
그것이야 말로 혼자선 절대 살아갈 수 없다는 좌절감과 타인으로부터의 애정이 너무나도 고픈 외로움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곧 그 노래는 토미에게로 향한다. 자신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여기까지 온 토미가 자신의 속삭임을 들었을 거라 생각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뀨드윅은 다시 한번 사랑에 그리고 이 차가운 도시를 건너기 위한 용기를 가지지 않았을까.
If I should stay, I would only be in your way
제가 당신 곁에 있다면, 전 당신의 길을 막을 뿐이죠.
I will always love you의 첫 소절이 들리자 뀨드윅은 고개를 펩시 문이 있는 쪽으로 돌려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So I'll go, but I know
그래서 떠나려 해요. 하지만 알고 있죠.
I'll think of you every step of the way
떠나는 길에도 걸음마다 당신만을 생각할 거란 것을.
And I will always love you
그리고 전 언제나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한참을 그렇게 있다 시선을 거두고 마이크 스탠드를 가지고 앞으로 나온 뀨드윅은 우리에게도 그때 그 기억을 설명해 주며 아까와는 다르게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욕을 하기도 했다. 아주 지겹다는 표정을 짓는 그때의 뀨드윅 귀에는 겨우 소음 정도로 들렸던 노래가 지금은 자꾸만 토미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이끌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헤드윅, 저 노래처럼 사랑이 영원할까?"
토미의 질문은 마치 헤드윅, 네가 내 반쪽일까? 라는 질문처럼 들렸다.
"토미, 나는 사랑이 영원하다고 생각해."
- 토미, 나는 네가 내 반쪽이라고 생각해.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사랑은 전에 없던 무언가를 창조해 내니까."
- 누군가를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해 줬으니까.
그리고 그들의 대화는 내 귀에는 이렇게 들렸다. 왼쪽 오른쪽을 번갈아 바라보며 그때의 기억을 회상하던 뀨드윅이 정면을 바라보며 웃었다. 뀨드윅이 그렇게 찾던 완성. 반쪽이었던 그 둘이 하나가 되었을 때 지어 보이던 그 웃음은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다.
"그래, 토미. 내가 바로 네가 찾던 반쪽이었어."
뀨드윅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입장에서 토미가 반쪽이라는 사실은 너무나도 명백히 깨달았기 때문에 토미에게 직접 토미의 반쪽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려 주는 뀨드윅의 이 문장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잔뜩 화가 난 상태에서 시작된 토미의 이야기는 결국 토미가 자신을 떠난 것을 정당화라도 하는 듯 자신이 토미를 얼마나 사랑했고, 또 토미가 얼마나 자신의 큰 숙제를 받아드렸는지에 대해 이야기가 흘러갔다.
"대단한 너. 날 버린 너. 너만을 난 사랑했어.
가슴 떨린 유혹도, 입맞춤도, 달콤한 노래도 모두가 거짓말."
처음으로 롱그립의 가사를 길게 불렀던 뀨드윅. 내가 만난 대단했던 너 그리고 날 버린 너. 그리고 나에게 남은 건 전부 거짓. 토미가 자신을 이용해 앨범을 내고 다시 한 번 자신을 이용해 이슈가 된 것에 대해 화를 내던 뀨드윅의 모습은 없고, 결국 그를 너무나도 사랑했던 그리고 자신을 떠난 후에도 계속 상처를 주던 토미를 그리워하는 모습만 남긴 채 무대에서 사라졌다.
뀨드윅이 남기고 떠난 빈 무대를 려츠학이 채웠고, 다시 무대로 돌아온 뀨드윅은 려츠학이 항상 있던 그 자리로 가 려츠학의 마이크를 만지작거렸다.
화려한 자신의 마이크와 다르게 평범한 마이크로 노래하는 려츠학과 토미. 자신이 아무리 화려하게 치장해도 내 음악을 가져간 토미와 내 뒤에서 노래하는 이츠학이 자신보다 더 좋은 무대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과 마주한 것 같은 뀨드윅이 한 번 더 작아지는 순간이었다.
"여자도 남자도 아닌 나,
남자도 여자도 아닌 너."
길게 늘어진 가발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며 울먹이는 뀨드윅에게 이제 관객과 무대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동안 철저하게 무시해 왔던 토미에게 향한 자신의 마음이 그리움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그리움의 모양은 사랑과 원망 등 다양한 감정이 섞여 있어 그 모습을 제대로 찾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엄청난 이슈가 될 거야!"
터져나오는 울음을 꾹꾹 누르며 얘기하는 뀨드윅의 이 말은 그렇게 해야만 우리의 이야기를 세상이 알아 줄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호기심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런 것 말고 정말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이 너무나 간절했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려츠학에게는 그것 또한 자신을 이용하는 것에 불과했을 것 같다.
"이츠학, 네가 내 반쪽이었어.
우리가 하나가 되는 거야, 응?"
관극 중 처음으로 뀨드윅이 려츠학을 잡기 위해 다가가는 순간이었다. 뒷걸음 치던 려츠학은 뀨드윅의 손을 뿌리쳤고 뀨드윅은 홀로 우두커니 선 그 상태로 넋을 놓고 있었다.
결국 자신의 뺨을 때린 엄마도, 자신을 만진 루터도, 남겨진 일 인치를 만지게 된 토미도, 간절했던 손길이 닿자 뿌리친 려츠학도 모두 자신과 살이 닿은 사람들은 자신의 곁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세겨지게 된 것이다.
익스퀴짓 때는 완전하게 미쳐버린 것 같은 몸짓과 비명, 실성해버린 웃음이 난무했다. 지금 이 순간이야 말로 누더기 같고 난도질 당한 자신을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자신을 만든 신을 향해 울부짖던 뀨드윅은 왜! 라며 목이 찢어져라 몇 번이고 비명을 지르다 옷과 가발을 집어 던졌다.
길게 내려온 진짜 머리카락이 뀨드윅의 얼굴을 덮고 있었지만 그 사이사이로 미쳐버린 눈빛과 웃음이 보였다. 그리고 토마토 하나를 들어 자신의 일 인치에 가져다 대고 실성하다 정면으로 들어올리며 터트린 후 온 힘을 다해 집어 던지고 몸부림치다 쓰러졌다.
자신과 맞닿은 모든 이들이 자신을 불행으로 여기는 존재로 살아오는 삶은 어떨까. 모두가 자신을 알게 되는 순간 떠나려고 하는 그 마음. 그래서 려츠학을 붙잡아 둔 이유도 이번에는 자신이 버림받는 입장이 되지 않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사랑이라 여겼던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자신을 쉽게 버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온전하고 일방적인 자신의 상처와 희생만이 외로운 뀨드윅의 곁을 채웠으니까 말이다.
같은 시각, 건너편 타임스퀘어에서는 뀨드윅이 토미의 눈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불러 주었던 위킫맅 반주가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너보다 어린 아이였잖아.
너무나 크고 특별한 남자도 여자도 아닌 신비한 신의 창조물 같은 당신."
자신의 어리석었음을 고백하는 토미. 자신이 신의 실패작이라 생각하며 스스로의 존재를 원망했던 뀨드윅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노래하는 삼 분 동안은 온전히 뀨드윅을 향해 노래하는 모습 같았다.
그리고 어렸던 자신이 뀨드윅에게 주었던 상처와 그때 뀨드윅에게 해 주지 못했던 말들을 용기를 가지게 된 지금 늦게나마 고백하는 것 같았다. 이런 삼 분 짜리 노래로 뀨드윅의 말 못할 과거와 상처들에게 감히 위로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도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처음 뀨드윅이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주며 불러 주었던 그 노래로 자신도 뀨드윅이 일어날 수 있도록 손이 되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자신을 차가운 도시에서 건너게 해 주었던 뀨드윅이지만 토미가 뒤돌아 보았을 때 뀨드윅은 아직도 그 도시에 혼자 남겨져 있었던 것이다.
"Goodbye, Wicked little town."
위킫맆의 마지막 소절까지 끝낸 토미는 눈물이 고인 얼굴로 입술을 달싹거렸다. 아웃트로가 다 끝나가고 있는데도 채 입을 떼지 못하고 있던 토미는 겨우 입을 열었다.
이번엔 자기가 뀨드윅에게 그 도시와 완전한 이별을 할 수 있도록 대신 인사를 남겨 주는 것만 같았다.
"미안해요. 고마워요, 헤드윅."
토미의 노래를 듣던 뀨드윅이 펩시 안을 가르키다 조명이 사라짐과 동시에 문으로 뛰어갔다. 환영을 본 것 같은 표정으로 이리저리 둘러보던 뀨드윅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마이크를 줍고 어느 때보다 더 거칠게 손톱에 있는 매니큐어를 벅벅 긁어내었다. 그리고 표정은 뭔가 굉장히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자신에게 늘상 존재했던 이 화려한 네일이 그 순간에는 굉장히 이질적이게 보이는 것 같았다. 꼭 토미가 말했던 그 도시를 건너오게 되면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는 순간을 맞이한 것 같았다.
"나 이제 어떡해....
이츠학, 나 이제 어떡해?"
처음으로 려츠학에게 질문을 던진 날이었다. 그 순간 뀨드윅이 자신의 이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해 줄 사람이 려츠학이라는 것을 무의식 중에 알고 있었던 것만 같았다.

주저앉아 가발을 빤히 바라보던 뀨드윅은 오른쪽 손에 있는 마이크와 왼쪽 손에 있는 가발을 번갈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결정한 듯 두 손에 힘을 꽉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작하는 미드나잇 라디오.
가발을 려츠학에게 건네 준 뀨드윅은 손을 높이 들어 하늘을 가르켰다.
"넌 하늘 저편 밝은 별.
들려오는 소리 Midnight radio."
자신의 욕심과 상처로 인해 자신의 과거와 똑같은 구속을 받으며 지내 온 려츠학을 자유와 함께 할 수 있도록 보내 주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뀨드윅이 뻗은 손을 맞잡은 려츠학에게도 또 한 번의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자유의 기회를 붙잡는 것 또한 절대 쉬운 것 아니라는 것은 우리는 이미 뀨드윅을 통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뀨드윅 뿐만이 아니라 사회가 자신에게 행했던 구속에 익숙해진 려츠학이 자유를 잡아내는 그 순간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겠지. 그리고 그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뀨드윅의 하늘을 향해 뻗은 손.
"지지 마라! 포기 마라!
그래서 우린 rock and rollers.
영원한 your rock and roll!"
목이 터져라 노래를 하던 뀨드윅이 손을 번쩍 들어올리자 뀨드윅을 비추던 조명이 관객쪽으로 돌아 하늘 위로 올라갔다. 힘차게 주먹을 들어 뒤를 돈 뀨드윅의 눈 앞에는 갈라진 트레일러와 그 뒤로 벽이 보였다.
외롭고 추웠던 그 공간, 한셀의 헤드윅이 피어난 그 날의 그 공간이 갈라지면서 드디어 저 넘어 진짜 한셀이 기다리고 있을 그 벽을 마주한 것이다.
뀨드윅 앞에 펼쳐진 거대한 벽은 어마어마한 존재감으로 뀨드윅을 위협하는 것 같았지만 뀨드윅의 뒷모습은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았다.
드레스업을 하고 나온 려츠학을 바라보며 웃던 뀨드윅은 팔을 벌려 려츠학을 맞을 준비를 했고 려츠학은 한걸음에 달려가 뀨드윅과 함께 포옹했다. 려츠학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를 하는 뀨드윅의 눈에는 진심이 가득했다.
자유를 준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실 자유를 빼앗아 자신의 곁을 지키게 한 려츠학에게도, 자유를 위한 선택을 했지만 아직까지 저 어두운 곳에 혼자 남아 있을 한셀에게도 사과하는 것 같았다.

려츠학에게 자리를 내어 주며 려츠학의 뒤에 서서 함께 정면을 바라보는 뀨드윅. 우리 이제 앞으로 나아가자고, 물론 우리가 가는 길은 다르겠지만 우리 이제 서로가 이 앞만 보며 나아가자고 얘기하는 눈빛이었다.
무대 중앙에 마이크를 가볍게 내려놓은 뀨드윅은 가장 후련한 몸짓으로 기지개를 켜며 벽으로 다가갔다. 뀨드윅을 당장에 삼킬 정도로 거대했던 벽이 갈라지고 그 사이에서 양쪽 벽을 꽉 붙잡고 있던 뀨드윅은 그 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뒷모습은 너무나도 듬직했다. 자신만의 헤드윅과의 마지막 매듭을 지으며 이젠 정의 내려진 헤드윅도 한셀도 아닌 온전한 나 자신의 새로운 시간을 맞이할 뀨드윅.
헤드윅으로 보낸 많은 시간과 자신이 사랑했던 토미와 그리고 끝까지 자신의 곁을 지켜주었던 밴드와 려츠학을 오늘 이 마지막 무대 위에 남겨둔 채 떠나는 발걸음은 너무나도 무거웠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뀨드윅은 벽으로 가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걸었던 것 같다.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것. 자신과 함께 했던 사람들,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 자신과 평생을 함께 한 음악보다 소중한 것은 바로 태어난 그 순간부터 자신과 함께 한 뀨드윅 자신이었다.
태초에 내가 있었기에 그 많은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었고, 음악을 사랑하는 내가 있었기에 계속 노래할 수 있었음을 알게 된 뀨드윅은 그 아주 오랜 옛날의 자신을 만나러 떠나는 것 같았다.
나의 첫 헤드윅이자 나에게 가장 많은 의미를 남겨 준 뀨드윅은 나에게 관극 내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날은 엄마와의 그리움을, 어느 날은 토미와의 사랑과 분노를, 어느 날은 이츠학과의 관계를.
그렇지만 그 날들 내내 뀨드윅은 항상 자기 자신의 1순위가 되지 못했었다. 술통에서 보았던 공포에 잠식된 자신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뀨드윅은 오랜 시간 자신을 마주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랬기 때문에 뀨드윅의 마이 스토리는 자신을 제외한 사람들의 영향력이 가득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자신이 하는 이야기일 뿐 절대 자기의 이야기가 아닌.
뀨드윅의 마음에서 외부로부터 인한 상처로 차단당해 밖으로 나오지 못하던 한셀은 끝없이 모양 없는 자유를 꿈꿨을 것이다. 바다를 본 적 없는 사람이 바다를 상상하는 모습과 같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도와준 것도 뀨드윅 자기 자신이었을 것 같다.
넓은 바다와 그 위로 펼쳐진 하늘, 찰랑거리는 파도 소리와 시원한 내음을 상상하던 한셀에게 세상의 모든 순간들이 항상 이렇게 나쁘지만은 않을 거라고 굳게 믿고 싶었던 뀨드윅의 바람을 담은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리고 뀨드윅은 자신이 너무나도 원했고 또 듣고 싶었던 이런 말들을 스스로 한셀에게 전하며 살지 않았을까.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상처받았던 자신을 외면하는 게 익숙해져서 타인에게도 위로와 사랑을 받을 줄 몰랐던 뀨드윅. 하지만 왜 그렇게까지 상처받은 어린 자신을 스스로 돌보지 못했냐고 그를 탓하고 싶지 않다.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찾기 위한 길고 긴 시간들이 이젠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그때 뀨드윅이 그토록 숨기고 살던 자기 자신의 모든 순간들을 외면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로 들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엄마와 한 침대에 누워 보냈던 그 어린 시절과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던 그 시간들이 하나가 되어 한셀도 헤드윅도 아닌 그저 온전한 하나의 사람으로 살아갈 뀨드윅의 발걸음은 너무나도 빛날 것이다.
많은 길을 헤매일 것이고,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릴 테고, 또 다시 어둠이 자신을 삼키려 드는 날들이 있겠지만 다시 온전한 "자신"으로 돌아오는 길을 알고 있는 뀨드윅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다.
- 2021 헤드윅 이규형 김려원 배우님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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