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edwig | 이규형
Itzhak | 제이민
2021년 뜨거운 여름에 만난 나의 첫 헤드윅과 첫 이츠학 페어의 마지막 시간을 남긴다.
뀨드윅과 제츠학의 관계성은 너무나도 특별하다. 마음을 꽁꽁 닫은 채 살아가며,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끼리 서툰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는 그 과정속에서 너무나도 많은 감정들이 오간다. 그렇게 그들이 함께 한 시간동안 제츠학은 뀨드윅의 그림자 같은 사람이자 뀨드윅에게는 또 그만큼 너무나도 당연한 존재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제츠학이 있었기에 뀨드윅이 여기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아닐까도 감히 생각해 본다.
그 감정은 많은 부분에서 느낄 수 있었다. 뀨드윅과 함께 노래하며 그의 뒤에서 그의 제스쳐를 따라 하고,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 어둡고 추운 그 좁은 공간에서 제츠학의 반짝이는 시선만큼은 항상 뀨드윅의 뒷모습에 꽂혀 있는 것. 뀨드윅의 말에 장난스럽게 웃기도 하고, 서로가 서툴지만 우스갯소리를 하며 함께 무대를 채울 수 있는 것. 하지만 내면에 있는 자아의 크기는 너무나도 다른 두 사람.
사랑의 형태를 잘못 끼워 맞춘 뀨드윅 속 혼자 외롭게 남겨진 한셀은 그 안에서 죽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첫 단추를 맞추어 준 루터와 결혼하기 전, 뀨드윅은 엄마에게 루터를 데려가 이렇게 말한다.
"엄마, 이 사람이 날 사랑한대요. 나랑 결혼해서 날 자유의 땅 미국으로 데려가 준대요."
이 문장에선 틀린 말도 그렇다고 옳은 말도 없다. 루터가 정말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과연 이게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유의 땅이 약속된 결혼일까, 사랑으로 인해 얻어진 자유일까. 아무도 확답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뀨드윅이 처음 느낀 이 사랑받는다는 감정은 곧 뀨드윅의 사랑 그 자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이다.
뀨드윅은 자신의 삶을 조롱거리로 삼고 자신의 상처를 아무렇지 않게 희화화하며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그렇게 해야만 자신의 이 볼품없는 이야기를 사람들이 귀담아 들어 주지 않을까 하는 자의적인 동정 유발이 계속해서 뀨드윅의 자아를 깎아 내리고 있는 게 아니었을까. 나를 희화화하여 얻은 짧은 순간의 웃음과 박수가 뀨드윅에게는 순간순간의 숨통이었을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곧 제츠학에게까지 뻗어진다. 제츠학을 처음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하는 뀨드윅은 목숨을 구걸하는 듯한 모습으로 제츠학을 조롱하며 제츠학에게는 이 거지같은 가발이 어떤 의미를 뜻하고, 또 우리가 지금 이렇게 여러분 앞에 서게 된 것인지 설명해 준다. 그러다 눈물이 잔뜩 고인 제츠학을 발견하고 뀨드윅은 당황하며 "분위기 띄우려고 했던 거잖아." 라고 한 번 더 제츠학을 찌른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자신의 조롱이 수단이 된 것처럼 제츠학의 상처 또한 뀨드윅에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한편으론 자신과 비슷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너무나 당연하게 내가 이 정도 선은 넘어도 되겠지 하는 선택적 믿음 또는 그 정도의 권력을 쥐고 있다는 당연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삶과 죽음의 문턱 사이에서 오가는 제츠학의 모습을 희롱하는 뀨드윅도 사실 그때의 그 감정을 완전히 잊지는 못했을 것이다.
크리스탈 나크트를 처음 만난 그 날, 그저 스쳐 지나갈 수 있었을 인연임에도 불구하고 뀨드윅은 제츠학의 가발을 똑바로 씌워 주며 자유를 줄 것을 약속한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제츠학이 나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서? 나와 같은 상처를 갖고 있어서? 아님 이번엔 버려짐을 당할 수 없는 입장이 되고 싶어서였을까.
제츠학의 롱 그립 중, 뀨드윅은 가발을 바꾸어 쓰고 제츠학이 원래 앉던 자리로 가 잔뜩 작아진 사람처럼 쭈뼛쭈뼛 앉아 제츠학의 노래 부르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리고 제츠학의 마이크와 마이크 대를 만져 본다. 이 춥고 어두운 곳에서 항상 자신의 뒷모습을 보며 노래를 부르는 제츠학처럼 자신을 감싸던 조명을 받으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빤히 바라본다.
그리고는 겨우 노래를 마친 제츠학에게 다가가 자신의 반쪽이 되어 달라 얘기한다. 그때 그 모습은 이미 절벽 끝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반쪽에 미쳐버린 사람. 혼자선 절대 이 삶을 살아갈 수 없을 거라는 지독한 확신. 존재 자체를 부정 당하며 살아와 이젠 조롱거리 말곤 자신의 존재를 인정할 곳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이젠 반쪽의 이유가 사랑이 아닌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만들어 줄 사람으로 제츠학을 붙잡는다. 마치 제츠학이 뀨드윅에게 살려달라 붙잡았을 때처럼.
"남자도 여자도 아닌 나...."
길게 내려온 가발을 만지작거리다 가발로 얼굴을 푹 가린다.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모면하고 도망쳐버리는 용도로 사용해 온 가발 안으로 또 한 번 숨어버린다. 터져나오는 울음을 꾹꾹 눌러담으며 제츠학을 붙잡는 뀨드윅을 제츠학은 아무 말도 없이 눈물을 흘리며 바라본다. 한때 나를 구원해 준 사람이 끝도 없이 추락해 버리는 모습을 보고 있는 제츠학.
"네가 나의 반쪽이었어."
뀨드윅은 그때의 제츠학처럼 자신을 구해달라 처절하게 신호를 보낸다. 제츠학은 그렇게 자신에게 다가오는 뀨드윅을 바라보다 천천히 뀨드윅의 손을 잡아 준다. 그리고 울고 있는 뀨드윅의 눈물을 닦아 주며 다시 원래 자신이 있던 춥고 어두운 곳으로 가 덩그러니 서서 엉엉 울음을 터트린다. 마치 나는 그냥 계속 여기에 있어 주는 것 말곤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고, 널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는 것을 차마 말하지 못하고 그 자리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이 기구하고 병신 같은 관계와 상황에서 아무도 위로해 줄 수 없고, 아무도 탓할 수 없었다.
그 좌절과 고통은 익스퀴짓 때 폭발했다. 노래를 부르지 못하고 왜! 라는 비명만 지르던 뀨드윅은 끝내 마이크를 빼앗기고도 처절하고 고통스럽게 소리를 지른다.
자신의 힘이 아니라 토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 곳을 가득 채운 사람들 앞에서 토미의 목소리로 듣던 자신의 노래를 자신의 목소리로 들려주고, 아무도 관심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자신의 삶을 희롱하던 뀨드윅은 미쳐버린 자신의 날것의 모습으로 실성을 하며 토마토를 아래에 가져다 댄다. 그리고는 스쳐지나간 자신의 인생의 모든 것을 원망하는 듯 토마토를 정면으로 들어올리고 순식간에 아작을 내버린다.
그래서 같은 시간 다른 공간에서 울려 퍼지는 토미의 위킫맅은 더욱 뀨드윅을 비참하게 만든다. 사람의 상처는 너무나도 잔인하다. 상처가 난 자리는 사라지지 못한다. 토미가 뀨드윅에게 남긴 그 상처는 한 번일지 몰라도 뀨드윅에게는 잔뜩 난도질 당한 마음에 한 번 더 칼을 꽂아버린 행동이라는 것을 토미는 모를 것이다.
그래서 토미가 용서를 구하는 방법은 너무나도 이기적이라 생각한다. 뀨드윅에게 그때 필요했던 것, 지금 필요한 것 따위는 모른 채 그저 자신의 방법으로 용서를 구하는 행동은 마음이 약한 뀨드윅에게 용서를 강요하는 것 말곤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You think that Luck Has left you there.
But maybe there's nothing up in the sky but air.
-당신은 행운의 여신이 당신을 그곳에 버렸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하늘 위에는 공기 말고 아무것도 없을 거예요.
무지했던 토미에게 많은 지식을 주고, 아름다운 감정을 알게 해 주고, 그를 너무나도 사랑해 주었지만 정작 자신 스스로에게는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고, 그저 반쪽이 없는 외롭고 차가운 도시 속 존재가 불분명한 사람으로 살아온 뀨드윅에게 이제 반쪽이 아닌 네 스스로 온전한 하나가 되어라고 말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뀨드윅은 다시 한 번 현실에 마주한다. 사랑했던 사람이 혹은 지금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자신에게 해 주는 이 이야기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 이야기를 끝으로 사랑과 이어지는 모든 감정들의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고 느꼈을 것 같다. 바닥에 널브러진 가발을 주워 아주 옛날 저 깊숙한 곳에 묻어버린 어릴적 자신의 한셀에게 괜찮아 괜찮아 하듯 가발을 토닥인다. 괜찮아, 한셀. 괜찮아. 나 여기 있잖아. 내가 미안해. 혼자 둬서 미안해. 모른 척해서 미안해. 정작 내 안에 너를 보지 못하고 너를 숨기려고 해서 미안해.
힘겹게 믿나를 시작하는 뀨드윅은 울음을 참지 못한 채 결국 한 마디를 놓치고 노래를 시작한다.
"사라져가는 아름다운 My dream My song."
My dream에서 가발을 품으로 당겨 두 눈을 꼭 감는 그 모습에서 뀨드윅이 가발과 맞바꾼 그의 인생 모든 것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제츠학에게 곧 자신의 꿈이자 자신의 속박이었던 가발을 건네어 준다.
"넌 하늘 저편 밝은 별 들려오는 소리. Midnight radio."
손을 번쩍 들어 하늘을 가리키는 뀨드윅의 손을 따라 하늘을 올려다 보는 제츠학과 그런 제츠학을 바라보는 뀨드윅. 저 하늘에는 제츠학이 찾던 아름다운 꿈이 있을 테고, 그런 제츠학을 바라보는 뀨드윅의 또 하나의 자유는 제츠학이 아니었을까. 제츠학이 바로 뀨드윅이 진정한 자유를 찾을 수 있도록 버티게 해 준 존재가 아니었을까. 자유를 얻기 위해 시작된 관계이지만 언제나 묵묵히 뀨드윅의 곁에서 노래하고 함께 웃어 주던 제츠학의 눈으로 뀨드윅은 하늘에 있는 밝은 별을 함께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넌 하늘 높이 날으는 발레리나."
다정하게 제츠학의 뒷목을 감싸며 속삭인다. 처음 크로아티아에서 제츠학에게 주었던 인간으로서의 자유.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츠학에게 줄 수 있는 상처와 아픔으로부터의 자유. 토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 사랑해 주던 그때 그 용기 있던 모습처럼 이제 스스로 설 수 있는 제츠학의 존재 가치를 알려 주던 뀨드윅의 손등에 제츠학이 입을 맞춘다. 그리고 뀨드윅은 손으로 얼굴을 감싸 눈물을 터트린다.
드레스업을 하고 나타난 제츠학을 바라보다 팔을 벌리고 제츠학을 기다리는 뀨드윅. 그 둘은 잠시 서로의 모습을 눈으로 담아낸다. 그리고 제츠학이 강한 발걸음으로 뀨드윅에게 다가가 서로 포옹을 하고 뀨드윅은 제츠학의 가발에 입을 맞춘 후 점점 멀어진다.

마이크를 무대 중앙에 내려두고 기지개를 켜며 벽으로 다가가 벌어진 벽 사이를 꽉 쥐고 버티던 뀨드윅은 그렇게 벽 안으로 사라졌다. 그런 뀨드윅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제츠학은 온 힘을 다해 노래를 계속 이어나갔다. 뀨드윅이 시작한 노래를 끝까지 마치고자 주먹을 꽉 쥐고 노래하는 제츠학의 뒤로 뀨드윅의 마이크가 반짝였다.
마지막 마디를 남겨둔 제츠학은 하늘을 바라보며 무어라 얘기했다. 제츠학의 입모양은 "기다려." 였다.
'네가 나에게 준 이 자유로 완전한 하나의 존재가 된 내가 이제 너를 데리러 갈게. 네가 네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 때까지, 네가 온전한 하나의 사람이 될 수 있을 때까지 널 위해 함께 노래할게'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뀨드윅과 제츠학, 너무나도 부족함이 많은 이 두 사람이 각자의 방법으로 서로를 위로해 주는 과정속에서 정말 당연히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함께 위로해 준 것이라 생각한다.
이기적이게도 상처의 본질은 타의적이지만 치유의 몫은 항상 본인의 몫이다. 하지만 이런 이기적인 인간 관계에서 그래도 이겨내고자 살아보고자 하는 용기를 주는 것도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에게 또는 누군가에게 나 자신이 어두운 밤하늘 하나의 빛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모두가 언제나 잊지 않았으면 한다.
- 2021 헤드윅 이규형 제이민 배우님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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